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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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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11  09: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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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청 자치행정과 서대운

「사람이 있다. 그녀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좀더 잘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빈터를 둘러서있는 나무 가지와 잎 새가 흐늘흐늘 움직이는 탓으로 사람의 온몸을 볼 수가 없었다. (중략) 바람결에 여자의 짧은 웃음소리 .... 」최인훈의 소설 「웃음소리」의 일부

서울대 법대 출신인 소설가 최인훈은 그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광장」으로 유명하지만 나는 그런 묵직한 사회적 주제보다는 문학적 향기가 그윽한 「웃음소리」를 더 좋아한다. 단편소설 「웃음소리」는 한 여인이 순정을 바쳐 한 사내를 지독하게 사랑했지만 배신당하고 결국 상심 끝에 그 사내와 사랑을 나누었던 장소를 찾아 자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여인은 자살하기에 그 장소만큼 안온하고 편안한 장소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야기는 반전한다.

지난 1월 25일 설날 나는 본가가 있는 광명시에 다녀왔다. 거기서 나는 동네 어르신 몇 분을 만났는데 초로의 70 대 초반 여자 한분이 나를 알아보고 자기 조카라며 중년 신사 한분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 중년 신사는 찬호형의 아들이었다. 나는 찬호 형을 잘 안다.

70년대 초반 내가 중학생일 때 우리 옆집에 살았던 동네 형인 찬호 형은 대학생이었다. 큰마을로 불리는 우리마을은 가옥이 60호 정도 되고 거기서 약 700M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은 약 20호 정도 되었는데 두 마을 통틀어서 대학생이라곤 찬호 형과 작은 마을 사는 예쁜 미자 누나 둘 뿐이었다. 찬호 형네는 동네에서 전답이 제일 많아 부자로 소문났고 미자 누나 네도 비록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전답이 꽤 많아 그녀 어머니는 무남독녀 외동딸을 무난히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다. 찬호 형은 방학 때면 나에게 때때로 영어도 가르쳐주고 항상 귀여워 해 주었다. 나는 작은 마을 미자 누나도 잘 아는 사이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때 였다. 나는 여느때 처럼 아버지의 지시대로 우리 집 재산 목록 1호인 암소와 갓 태어난 송아지를 마을 옆 송전의 숲 갈대 밭에 묶어 놓고 풀을 뜯게 하고 여물 쑬 꼴을 베고 있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복더위, 오후에 나는 송전의 숲 마차 길에서 소똥구리가 자기 몸집의 몇 배되는 소똥을 풀어 동그랗게 공을 만드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뒤편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아랫마을 사는 대학생 미자 누나였다. 마을로 가서 찬호 형을 이곳으로 불러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누나에게 소똥구리를 잘 관찰하라고 부탁하고 단숨에 달려가 찬호 형에게 전했다. 미자 누나가 송전의 숲에서 기다린다고.... 송전의 숲이라야 큰 마을과 작은 마을 사이에 커다란 노송 열 몇 그루가 전부다. 그리고 그 주변은 민둥한 갈대숲이다. 그 갈대숲에선 우리 집 소가 풀을 뜯거나 더위에 겨워 되새김을 하고 있다. 여름이 가기 전 나는 몇 번 더 그 누나의 전갈을 찬호 형에게 전해주었다. 찬호 형과 이웃동네 미자 누나가 연애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선남선녀였다. 그래도 두 사람은 마을 어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까봐 몰래 만나고 무척 신경 쓰는 눈치였다.

그 해 여름의 끝자락 어느 날 오후 분홍색 짧은 원피스를 입고 치맛자락에선 장미향을 솔솔 풍기며 미자 누나가 나타났다.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누나의 부탁에 따라 이번에도 나는 찬호 형을 불러다 드렸다. 그 누나의 손끝에 이끌려 둘이 송전의 갈대숲으로 향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황홀해 보였다. 나는 풀을 다 베어 집에 갔다 놓고 해질녁이 되어 외양간에 소를 들이기 위해 갈대숲으로 갔다.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찬호 형과 미자 누나의 밀어는 계속되고 있었다. 속삭임 사이사이로 암비둘기 끼륵끼륵 수줍은 여인의 웃음소리가 황혼의 붉은 노을을 타고 바람결에 실려 왔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그 웃음소리는 감미롭기도 하지만 사춘기 소년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였다. 사실 갈대숲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웃음소리 만큼 궁금증을 유발하고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여름은 지나갔다.

찬호 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했다. 나는 놀랐다. 신부가 미자 누나가 아니고 이웃 마을 사는 신흥 갑부의 딸이라고 했다. 찬호형네 처갓집은 그 무렵 시흥군에서 일부가 분리되어 광명시로 승격 될 무렵 철산리 일대와 하안리 일대 임야와 전답을 보상받아 졸지에 70억대 신흥 갑부가 된 집이었다. 그런대 더 놀라운 것은 찬호 형이 5월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해 10월 추석 다음날 처갓집에서 급사했다. 심장마비였다. 그 마을 최고 부잣집 김영감네 장남이 신혼기간에 급사했으니 마을사람들 도 큰 충격이었다. 그 후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수원으로 갔고 찬호형네 소식은 잘 듣지 못했다. 그런대 오늘 찬호형의 부인에게서 유복자가 태어난 사실을 알았다. 찬호형의 부인은 졸지에 남편을 잃고 재가 하는 바람에 이 아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키우다 시피 했다고 한다.

최근에 나는 미자 누나의 소식이 궁금해 졌다. 그리하여 동네 친구들에게 전화하여 미자 누나의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친구중에 미자 누나의 육촌 동생을 안다고 하여 물어물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미자 누나는 찬호 형이 결혼하자마자 안양으로 이사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 어머니는 암에 걸려 돌아가시고 미자 누나 홀로 남았다고 한다. 그런대 그 미자 누나도 유복자를 하나 나았다고 한다. 그리고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찬호 형은 떠났지만 찬호 형은 결국 두 명의 유복자를 둔 셈인데 부인에게서 난 유복자는 할아버지의 재산을 잘 일궈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미자 누나에게서 태어난 유복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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