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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단상 모윤숙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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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3  10: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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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행정과 서대운

「시몬, 낙엽지는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은 너무나도 쓸쓸하다
바람이 휘몰아 칠때는 낙엽은 정답게 소리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소리와 여인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니.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 시「낙엽」의 일부.

청소년기 나는 시몬이라는 이국적 이름에 끌리어 프랑스 낭만파 시인 구르몽의 「낙엽」이라는 시를 애송하였다. 1973년 고등학교 1학년때 국어선생님의 권유로 모윤숙선생의 「렌의 애가」를 읽고 나는 또 하나의 시몬을 만나게 된다.

「시몬, 그대는 들리는가 낙엽밟은 소리를
나는 그대와 함께 낙엽이 떨어진 산길을 걷고 싶소

시몬,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 오솔길에서 낙조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던 그 곳을 다시 걷고 싶소

시몬, 그대가 떠난 어딘가는
나는 그대의 발자취를 따라 먼길을 가고 싶소 」
모윤숙의 시 「렌의 애가」의 일부

「렌의 애가」는 시인 모윤숙이 아프리카 숲속에서 홀로 우는 새의 일종인 렌을 자신의 처지에 감정 이입하여 차마 이룰수 없는 사랑의 대상인 중년 남성 시몬을 그리워 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쓴 산문시이다. 그럼 모윤숙은 많고 많은 이름중에 왜 하필 외국 남자 이름 시몬을 그의 시에 불러 들였을까? 구르몽의 시를 보고 모방 했을까? 돌이켜 보면 석가모니에게는 가섭이라는 수제자가 있고 공자에게는 안회라는 수제자가 있듯이 예수에게는 열두제자 중에 베드로라는 수제자가 있었다.

베드로의 영어식 이름은 싸이먼 피이터, 싸이먼의 불어식 이름이 시몬 (또는 시몽)인데 그가 구도자적 시를 쓰기위해 여기에서 따온듯 하다. 한때는 시몬이라는 사랑의 대상이 그의 스승이었던 춘원 이광수라는 설도 있었고 그 당시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최고 엘리트 이강국이라는 설도 있었으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그의 시를 좋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여성 특유의 과잉감수성 때문이다. 그의 과잉감수성은 내 청춘 피끊은 심장을 더욱 더 뜨겁게 달구었고 그것의 절정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에서 였다.

「산 옆의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없이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중략)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중략)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이 땅에서 피어 살고 싶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모윤숙의 애국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일부

내 나이 25세때 광주 보병학교 졸업식, 소위 계급장을 달고 졸업앨범을 받던 날, 졸업 앨범 첫장에는 바로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시가 프로로그 되어 있었다. 내가 화천 15사단에 배치되어 소대장이 되었을 때 15사단( 당시 사단장은 며칠전에 작고한 이기백 전 국방부 장관)은 야간에 침투한 무장공비를 소탕하여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하고 또 다시 무장공비가 침투하면 장병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목숨걸고 싸우자고 다짐하였다. 나 또한 피끊는 혈기에다 모윤숙의 시가 가슴에 불을 붙여 애국심이 활활 타오르고 조국을 위해 한목숨 바칠 각오를 하였다. 나는 모윤숙 선생의 시를 더욱더 좋아하게 되었고 모윤숙 선생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내가 모윤숙 선생에 대해 크게 실망하게 된 것은 과거에 친일파였고 민족의 반역자라는 것을 알고 부터다.

젊은 시절 그의 과잉감수성은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기 보다는 조선청년들에게 대일본제국이 벌이고 있는 태평양전쟁 지원병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자살특공대가 되기를 선동하고 전쟁물자를 조달해주기 위해 일제 애국채권을 파는 등 일본제국주의 정책에 앞장서는데 사용하였다.

「대화혼(大和魂) 억센 앞날 영겁으로 빛내일
그대들은 이나라의 앞잽이 길손
피와 살 아낌없이 내어 바칠 반도의 남아, 희망의 화관입니다.
가난한 이몸이 무엇을 바치리까? (중략) 오로지 끊는피 한목숨 축여 보태옵니다」
일본군 지원을 선동한 모윤숙의 시 「지원병에게」의일부

특히 어린 날개 - 조선소년 희로오카 갱야 소년항공병에게-에는
「아름드리 희망에 팔을 벌리고 큰 뜻 큰 세움에 내 혼을 타올라
바다로 광야로 나는 곳 마다
승리의 태양이 너를 맞으리」이런 싯귀로 넘쳐난다.
여기에서 승리의 태양은 일장기를 일컸고 조선소년들의 자살특공대 가미가제 지원을 독려한 글이다.

그의 친일의 극치는 「여성도 전사다」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우리는 높이 펄럭이는 일장기 밑으로 모입시다. 쌀도 나무고 옷도 다 아끼십시오.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 우리의 목숨만은 아끼지 맙시다. 아들의 생명 다바치고 나서 우리 여성마자 나오라 하거든 생명을 폭탄으로 바꿔 전쟁 마당에 쓸모있게 던집시다.」

자신의 친일 행각이 부끄러워 였을까? 해방이 되고 그는 속죄하듯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애국을 하였다. 이승만 박사를 도와 미국 원조를 많이 받기위해 잘하는 영어를 무기로 애국하였다는 것은 익히 아는 소문이다. 특히 그는 반공주의자로 변신한다.
그러나 그 자신 친일 행각에 대해 국가와 민족 앞에 참회하고 속죄한적은 한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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