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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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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3  11: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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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행정과 서대운

「뒤 돌아 보지 말라」 는 명령을 어기고 뒤를 보아 일이 수포로 돌아간 사례는 꽤 많이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극명한 예가 나온다. 하나님은 어느 날 비역과 음란 하드코어가 난무하는 소돔과 고모라라는 두 마을을 불로써 천벌을 결심한다.

천벌을 내리기 전 하나님은 그 마을에 사는 의인 롯에게만은 가족을 데리고 빨리 마을을 탈출하라고 명령한다. 한 가지 금기사항은 절대로 뒤를 돌아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롯의 가족들은 무사히 마을을 탈출하였으나 롯의 아내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기둥이 되고 만다.

1970년대 중반 대학생 때 동아리에서 관악산으로 등산을 가게 되었다. 훈훈한 봄바람이 산들 산들 불어오고 캠퍼스의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4월의 주말, 전체 회원들 중 7명이 등산에 참여하였는데 그중에 홍일점 여학생이 1명 끼여 있었다.

보드라운 연두의 새잎, 송화가루, 청명한 하늘, 약간 차가운 공기, 등산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거기에 아리따운 영문과 후배 여학생까지 동행하여 말벗이 되어주니 기분이 상쾌하였다.

등산은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입구에서 시작하여 연주암 방향으로 올라 과천 쪽으로 하산하여 버스를 타고 서울로 귀가 하는 것이었다. 그날 관악산은 산인지 인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등산객들은 좁은 등산로에서 서로 비껴 오르내려야했다.

우리는 5부 능선 쯤 올랐을 때 너럭바위 위에서 배낭을 풀어 커피와 오이 그리고 감귤을 먹으며 잠시 상춘의 기쁨을 맛보았다. 등산객이 너무 많아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관악산 정상이 빤히 보이는 약 8부 능선쯤 다다랐을 때 뒤따라오던 여학생이 나를 불렀다. 뒤돌아 본 나는 그녀가 겸연쩍은 표정을 짓기에 아무래도 급하고 불편한 용무가 있는 것 같았다. 소변이 급했던 것이다.

나는 나머지 일행들에게 천천히 올라가라고 이르고 등산로에서 이탈하여 그녀를 데리고 관목이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조금 들어갔을 때 이쯤에서 서서 자기가 볼일을 볼 테니 누군가 오는지 나에게 망을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그녀가 여섯 명의 남학생중에서 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아마 같은 과 선배였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몸에 꼭끼는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고 있어 용무를 보는 데도 쉬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볼일을 보는데 갑자기 기총소사와 같은 굉음을 내며 헬기한대가 능선을 타고 넘어왔다. 어느 TV 방송국 헬기 1대가 나타나 취재에 열을 올렸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 그만 뒤돌아서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수풀사이에 흥부네 커다란 함지박을 반으로 쪼개 엎어놓은 듯한 처녀의 하얀 방댕이가 들어왔다. 아뿔사! 그 순간 그녀의 날카로운 두 눈이 불꽃을 튀겼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우리는 왜 뒤돌아보게 되는 것일까? 기차는 앞만 보고 달리지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는다. 또 어느 시인이 창공의 「새는 날아가면서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멧돼지도 앞만 보고 질주하지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뒤돌아보고 일을 그르친다.

옹고집전의 장자 며느리는 집에 놓고 온 된장이 아까워 뒤를 돌아보고, 어떤 이는 자신의 몸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움 때문에 뒤를 돌아본다, 또 어떤 이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뒤를 돌아보고, 어떤 이는 첫 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에 뒤를 돌아본다.

또 어떤 이는 집에 쌓아둔 재물이 아까워 뒤를 돌아보게 되고, 또 어떤 이는 삶에 대한 애착 때문에 뒤를 돌아보게 된다. 또 어떤 이는 과거의 회한 때문에 자신의 뒤를 돌아보게 되고 또 어떤 이는 호기심 때문에 뒤를 돌아본다. 그러나 뒤돌아보고 상황이 좋아진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앞만 보고 가라

나는 그날 등산가서 왜 뒤돌아보았을까?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헬기 소리에 놀라 나는 엉겁결에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형벌은 가혹했다. 졸업식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그녀는 진지하게 나에게 말했다.

자기의 속살을 본 사람은 내가 처음이니 자신을 책임지라고 하였다. 박애주의자인 내가 어떻게 그녀의 요구를 거역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3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쾡이 같은 그녀를 아내로 맞아 열심히 부양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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